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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문화관광

독립운동가 심재인

작성일 2018.02.28

작성자 문화체육과

조회수 975

독립운동가 심재인 인물 이미지
심재인(沈載仁, 1918~1950) 선생은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평동마을에서 태어나 1938년 일본 장기현(長崎縣) 소재 간조농학교(諫早農學校)에 재학하던 중 일본인들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차별대우를 체험하면서 민족적 각성(覺醒)으로 비밀결사 재일학생단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지사이시다.

1940년 4월 장기현 간조시 선월정(船越町) 임우칠(林友七)의 집에서 이상만(李相晩)·박근철(朴根澈) 등과 함께 비밀결사 재일학생단(在日學生團)을 조직하고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과 농업정책 등에 반대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독립운동의 방안을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선생은 1941년 간조농학교를 졸업하고 우도궁고등농림학교(宇都宮高等農林學校)에 진학한 이후에도 일본에서 동지를 규합하였으며, 귀국한 동지들을 통해 국내에 조직 거점을 확보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1942년 경북 예천(醴泉)의 동지 이상만 등이 밀회를 하고 있던 중 일경에게 노출되어 80여 명의 동지들이 피체되자 선생도 연루자로 피체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


1943년 5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으나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50년 7월 33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으며, 고성문화원에서는 애국지사 심재인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선생이 태어난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생가터에 표지석을 설치하였다.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애국지사(왼쪽 첫 번째 심재인 선생)>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애국지사(왼쪽 첫 번째 심재인 선생)>

<애국지사 심재인 선생 생가(대가면 연지리 평동마을)>

<애국지사 심재인 선생 생가(대가면 연지리 평동마을)>

<애국지사 심재인 공이 부인과 안장된 대가면 연지리 선영의 묘소>

<애국지사 심재인 공이 부인과 안장된 대가면 연지리 선영의 묘소>

<참고자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43. 5. 7.)

- 固友會報(1990, 19面)

- 固城民族運動(鄕土史料硏究會, 1979. 10. 1., 141~152面)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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