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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명 최정원
(崔正元) - 독립지사
시대 일제강점기
첨부
설명 본적은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 465이다. 기미년 3월 중순 독립선언문을 입수한 최정원과 허재기는 고성 지방 의거를 모의하였고, 한학자 의제 이종홍에게 부탁하여 독립선언서를 요약 작성하여 최정주, 최낙희, 이정수, 문태용, 우태선, 김해제, 구남서, 최낙종 등의 지방동지를 규합 3월 20일 국천사장에서 거사키로 하고 집합신호로 나팔을 불기로 하였다. 3월 20일 오전 9시 양양한 나팔소리는 구마면내에 울려퍼졌고 이 소리를 신호로 수많은 군중이 국천사장에 운집하였다. 첫번째 등단한 최정원은 장중한 목소리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이어서 등단한 허재기는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으며 시위군중은 주동자를 선두로 만세를 부르며 배둔장터로 향하였다. 그날 밤 허재기가 작성한 "한인관이(韓人官吏) 퇴직(退職) 권고문(勸告文)"을 등사하여 면사무소 앞에 붙이고 다음날 각처의 관공서에 발송하였다.

이때 일본헌병들의 검거를 피하여 도일(渡日)하였는데 동경에서 동향 동지 최낙종과 같이 재일 교포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동흥노동동맹회를 조직, 박춘금이 주도하는 친일단체인 상애회에 대항하여 교포노동자들의 권익옹호에 노력하였다. 또한 서상한, 이영, 변영효 등 동지와 제휴 노동월간지와 잡지 등을 발간하고 해외동포들에게 배포하여 민족의식 함양 및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20년 10월 만주의 독립군 양성기관인 서로(西路) 군정서(軍政署)에서 윤영백을 밀파하여 의용군 모병과 군자금 모금을 하였으나 1921년 2월 산청군 신동면에서 모금활동 중 밀정에게 탐지되어 일본헌병에게 체포되었고, 1921년 4월 1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재판에 회부되어 제령7호 위반이란 죄목으로 징역 3년의 형을 받고 복역중 잔악무도한 장독과 겹친 옥고로 순국하였다. 훗날 조국 광복후 정부에서는 그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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