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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국가상징

D247

전설

배바위

옛날에 마을이 있었다는 "묵은터" 동쪽에 있는 돌다리로 이 마을에 살았던 힘센 장사가 산에 소풀을 먹이러 갔다가 길로 큰 바위를 보고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 돌 2개를 소고삐에 묶어 메고 내려와 마을앞에 놓은 돌다리로 전하고 있으며 돌의 크기가 두께가 약 50㎝, 길이가 약 3m 정도로 마을의 새마을 사업으로 도로가 확장될 때 철거되었다.

옥류봉

상명마을 뒷산에 있는 옥녀봉은 옥녀가 가야금을 치는 형상이고 맞은편의 선유산은 옥녀의 가야금소리에 맞추어 선비가 춤을 추는 모습이며 망선봉은 옥녀와 선비가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하고 있다. 옥녀봉은 옛날 옥녀란 아가씨가 가난한 집안에 출가를 하여 삭바느질을 하면서 남편의 공부를 도와 남편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떠난 뒤에는 마을 뒷산에 올라 멀리 한양을 바라보며 남편의 장원급제를 빌면서 가야금을 쳤다고 한다. 이러한 옥녀의 지성이 감천되어 어느날 갑자기 산신령이 나타나서 "옥녀야! 너의 지극한 정성에 너의 낭군이 과거에 장원급제 하였다."라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불귀의 몸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연대암

구례마을에 있는 연대암은 옥천사의 3개 암자중 하나로 1694년에 창건 되었으며 이 암자에 얽힌 전설은 옛날 이 마을은 깊은 산골로 호랑이 등 산짐승이 많아 사람이 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연대암의 수도승이 법당에서 염불을 하다가 깜빡조는 사이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 옥동자가 연화산과 문치산 중간을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에 다시 꿈에 옥동자가 나타나 말하기를 "동네 입구에 큰 숲을 만들면 짐승도 없어지고 인가가 형성되어 사람이 살게 될것이니라" 하였으므로 수도승이 다음날 마을로 내려와 마을입구에 나무를 정성드려 심으니 과연 옥동자가 말한대로 산짐승도 없어지고 한집, 두집, 인기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심었다고 하는 수백년된 나무가 한두그루씩 지금도 남아 있으며 마을이 숲으로 둘러 싸여 바깥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용비천

좌연리 마을 앞에 흐르는 개울을 용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해서 용바천이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났다" 는 속담을 연상케하는 개울 이름인데… 옛날에 좌연마 을에 김씨성을가진 부자가 살았는데 김씨는 몹시 욕심이 많은 고리대금 업자로 알려져 있 었다. 어느해 극심한 한해가 들어 장리를 얻어쓴 사람들이 빚을 막연한 처지가 되었을 때 이 마을에 사는 이씨는 김씨로부터 얻어쓴 장리를 못갚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김부자 는 비정하게도 이씨에게 빚대신 그 아들을 자기집 종으로 내 놓으라고 강요했다. 빚을 쓴 이씨에게는 열댓살난 총명한 아들이 있었는데 김부자가 항상 자기집 종으로 삼을 것을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아무렇기로 빚대신 자식을 남의집 종으로 줄 수는 없다 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 이틀 지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생각이 달랐다. 자기 한몸 팔려가면 부모님의 딱한 사정을 해결할수 있다는 생각에서 종으로 들어가겠다고 말 하고는 김부자 집으로 갔다. 그러나 김부자 집에는 애비와는 달리 착한 딸이 있어 종으로 들어온 이씨 총각을 은연중에 사랑하게 되었다. 김부자는 이런 사연을 눈치 챘는지 딸을 시집보내겠다고 혼처를 구하게 되자 김부자 딸은 이씨총각과의 깊은 사랑을 아버지에게 애원하였으나 김부자는 딸의 애원도 묵살하고 시집보낼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어느날 이 씨총각이 뒷산 벼랑에서 개울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렇게 못잊어 하던 김부자 딸도 그날밤 같은장소에서 몸을 던져 못다한 사랑의 한을 푼 것이다.… 몇일이 지난 뒤 이들이 떨어져 죽은 개울에서 혼연히 무지개가 일더니 두 마리 용이 그 무지개를 타고 하 늘로 나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보았다고 전하고 있으며 효석과 설녀란 이름으로 전하는 이들 두 사람은 용이 된 것이다. 그래서 "개천에 난 용" 들이라 말하고 있다.

황소바위

옥천사 입구에 있는 백령암 즉 "황소바위" 라 불리우는 큰바위로 옛날 옥천사를 창건할 때 (청연암) 황소 한 마리가 나타나서 물도 날라주고 돌도 치워주고 나무도 날라 주는 등 많은 일을 도왔으므로 절 낙성때 큰스님이 황소의 공을 치하하여 소 목에 염주를 걸어 줄려 는 찰나에 갑자기 황소의 몸에서 하얀 안개가 피어 오르더니 바위로 변하였다고 하여 황소바위로 부르고 있다. 그 후 임진왜란때 왜병이 이곳에 침입하여 옥천사를 불태우고 자 방루에서 조련하고 있던 승병들이 황소바위 앞에서 진을 치고 염주를 들고 불공을 드리고 있는 것을 보고 왜장이 나타나서 바위를 부수려고 정을 내려치자 바위에서 붉은 선혈이 치솟아 왜병들이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치게 되었고 우리 승병들은 용기백배가 되어 왜병을 격퇴하고 옥천사를 지켰다는 전설이 있는 호국수암의 바위이다.

원두막

옛날 마을앞 오솔길에 원두막이 있었는데 한양으로 과거 보러가는 한 선비가 쉬어 갈려고 원두막에 들렀더니 집주인 노파가 중병을 앓고 혼자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갈 수가 없어 산에 가서 약초를 캐어 달여먹어도 병은 쉬 낫지 않고 과거 날짜는 임박하여 틈틈이 글을 읽으면서 정성을 다하여 병구한을 한 끝에 노파의 병은 나았지만 이제 길을 떠나도 늦어서 과거를 볼 수 없는 궁지에 빠졌다. 이미 과거를 체념한 선비는 그래도 길을 떠났는데 어디선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막고 꼬리를 흔들면서 자기등에 올라 타라는 시늉을 하기에 선비는 눈을 딱감고 호랑이 등에 올라 타자 호랑이는 비호처럼 달려서 삼일 만에 한양에 도착하여 과거를 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처녀바위

옛날 용안마을안에 김진사와 이진사 두선비가 살았는데 두 분은 극친한 사이로 김진사 딸과 이진사 아들이 혼인을 하기로 서로 언약을 하고는 세월이 흘러 혼례일을 택일하고 나서는 이도령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효녀이던 김진사 딸은 혼례식은 못 치렸지만 혼인한 것과 다름없다고 하여 상복을 입고 이도령 무덤앞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끝내 열녀 바위로 변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이 바위가 마을에서 보이면 처녀들이 바람난다고 하여 지금도 울창한 잡목숲으로 바위를 보이지 않게 하고 있다.

삼용(三龍)

옛날 용궁마을 앞 개울에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이곳에 용 세마리가 살았다고 한다. 이들 용은 서로 하늘에서 바람을 불게 하고 비가 오게 하는 등 천지를 운행하는 힘을 갖고자 힘 겨루기를 하였는데 아무리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자 용들은 제 힘에 지져서 끝내 한 마리만 구만면 와룡마을로 가고, 한 마리는 이웃 마을인 용안 마을로 갔다고 한다. 서로 헤어진 용들은 그 후 힘을 잘 다스려서 해마다 이 마을에 풍년이 들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양부자의 무덤

옛날에 봉치 장고개 위쪽 큰 번덕에 양씨 부자가 살았는데 이는 성리학에 능통하여 인간의 운명을 잘 점치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 아들의 관상을 보니 불행히도 걸인상을 지니고 있어 양부자는 후사가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유언을 하기를 훗날 내가 죽거든 마을 뒤 개내곡 중턱 뻔덕밭에 묻어 달라고 했다. 사유인즉 묘를 돌보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관리가 될것으로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양부자는 죽고 유언대로 묘를 그 자리에 썼다. 훗날 양부자 아들은 관상대로 걸인이 되어 사방에 문전걸식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영영 소식이 없어지고 양부자 묘자리는 과연 명당자리로 그곳이 소먹이는 목동들의 놀이터가 되고 마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관리하지 않아도 잡초하나 나지 않고 잔디만 무성하여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집터 주변에 대밭이 있고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다.

호두산(虎頭山)

옛날 청동마을에 최진사라는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여도 재산이 늘지 않고 조금 재산이 모이면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겨서 모은 재산은 탕진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스님이 한분 찾아와서 최진사의 집을 보고는 집터를 위쪽으로 옮기면 큰부자로 살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최진사는 집을 당장에 위쪽으로 옮겼다. 얼마후 스님의 말대로 최진사의 가사는 날로 번창하였으나 본래 최진사는 가난했던 사람으로 재산이 모여도 자랑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못사는 이웃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가질줄도 알았다. 그러던 차에 세월은 흘러 최진사는 집을 비워둔 채 이사를 가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날 그 비워진 집에 김진사라는 사람이 살게 되었다. 김진사도 날로 가세가 번창하여 재산이 늘어나자 마음이 달라졌다. 더많은 재산을 탐하여 이웃사람에게 많은 이자를 붙혀서 돈을 빌려 주는 장리 놀이를 하는 등 쌀한톨도 나누어 먹을줄 몰랐다. 그러자 뒷산 호두산이 가만 있지 아니했다. 어느날 밤에 큰호랑이 울음이 마을을 진동하더니 김진사가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그후 김진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으며 물욕에 눈이 어두운 어리석은 사람에게 하나의 경종이 된 이 전설은 청동마을 뒷산인 호두산에 얽힌 전설이다.

처녀바위와 총각바위

청남마을에 옛날 옛적에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처녀의 집은 양반 부자집이었고, 총각집은 가난하였으나 예의가 엄격한 집안으로 총각은 마음이 착하고 용모가 준수했다. 어느날 처녀가 우연히 담장너머로 옆집의 준수한 총각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때는 "남녀칠세 부동석" 이라는 엄격한 유교적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던 때라 옆집에 저렇게 준수한 총각이 살고 있는 줄은 미쳐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처녀의 나이는 한창 무르익은 나이 인지라 총각을 보는 순간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날밤 처녀는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어 옆에 자고있던 몸종을 깨워 두루마리에 글을 지어 보냈다. "내일 한나절 해가 그림자를 발아래에 오게 하거든 소당산 깊은 산골에 있는 큰 바위까지 나오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말자 처녀는 나물캐는 바구니를 들고 일찍 나섰다. 그날 소당산 바위 위에서 처녀 총각은 첫 대면을 하였다. 서로가 보는 순간 반해 버렸다. 그후 두남녀는 자주 만났다. 이런 소식이 점차 동네에 퍼지기 시작했다. 소문은 점차 불어나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고까지 누명을 쓰게 되었고 마을의 수치니 몰매를 돌려야 한다고까지 했다. 일이 이쯤되자 총각은 처녀 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고는 서로 결혼을 하면 해결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처녀 아버지는 가문을 욕되게 한 죄를 용서치 않는다고 하였다. 그후 총각은 몇번 이나 간청을 했지만 처녀 아버지의 마음은 움직이질 아니했다. 그러던 어느날 처녀와 총각은 소당산 큰바위 위에서 만났다. 그리고 기막힌 자기들의 운명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저 세상에 가서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의 한을 풀어보자고 다짐하고는 바위에서 떨어졌다. 이순간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면서 천지를 진동하더니 큰바위가 반으로 뚝 갈라졌다. 마치 처녀 총각의 애달픈 사랑의 이야기를 하는듯 지금까지도 전설로 전하고 있다.

당산(堂山)

가천마을 앞 당산은 예로부터 신령이 있는 산이라 하여 함부로 접근을 금하며 더욱이 산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거나 욕을 하면 산신령이 노하여 큰 재앙을 받는다고 하였다. 어느날 권세높은 양반 한 분이 말을 타고 당산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동네에 사는 농부 한 사람이 길을 막아섰다. "이 산은 산 앞을 지나게 될 때에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옵니다. 신령이 있는 산이니 부디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옵소서" 하였다. 그랬더니 양반은 "여보시오! 당치 않은 소리 하지말고 길이나 썩 비키시오. 산에 신령은 무슨놈의 신령이 있다고 야단이오." 하면서 농부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지체높은 양반은 말을 타고 산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막 산 앞을 지나는 순간 말 앞발이 싹 잘려버린 것이다. 이때 지체 높은 양반은 오금을 펴지 못하고 기어서 산앞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당산의 산신령은 마을에 들어오는 각종 질병을 막아주고, 재난을 미리 예고하기도 한다고 전하며 또한 존엄성이 너무 커서 추호의 모독도 용납치 않는다고 하여 지금도 이 당산의 소나무 하나도 손색없이 보존되고 있다.

선유산(仙遊山)과 고목나무

차치마을 건너편 안산을 선유산이라 하며 이 산은 보담산 정기를 타고 신선(神仙)이 놀았다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고 선유산을 안대하여 살고 있는 차치마을은 효자효부가 많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산정상에 있는 금포구 고목나무 한그루는 황금빛을 자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산정상이 멀리 진주에서 보면 붓끝 같이 보인다고 하여 필두봉(筆頭峰)이라고도 하며 이산 정기를 받아 필재(筆才)가 많이 난다고 전하고 있다.

담당부서개천면 총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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