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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문화관광

선각자 박거수

작성일 2017.11.03

작성자 문화체육과

조회수 823

선각자 박거수 인물 이미지
박거수(朴居洙, 1887~1928) 선생은 고성군 고성읍 무량리 173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2년여 동안 학업과 선진문물을 접하고 1908년(22세) 고향 고성으로 돌아와 민족학교 철성의숙(鐵城義塾) 설립과 1919년 고성의 독립만세운동 주도, 원동무역주식회사 설립 참여, 고성체육회와 고성청년단 조직 등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시킨 선각자이다.

민족학교 철성의숙(鐵城義塾) 설립

선생이 설립한 철성의숙(鐵城義塾)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고성의 옛 이름인 철성(鐵城)을 따서 고성읍 덕선리 선동에 설립하여 ‘사람은 알아야 하고, 알아야만 사람다운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육영(育英)의 신조로 선생의 숙부이신 박진완(朴鎭完)을 초대교장으로 모시고 선생은 교감으로 학교를 운영하였다. 그 후 학교는 22년 동안 지속되었으나 일제의 압력으로 1930년 결국 문을 닫았다.


1919년 고성독립만세운동 주도

1919년 3월 15일 밤 고성읍 덕선리 선동마을에 있는 철성의숙에 교장 박진완과 교감 박거수를 진주 사람 이주현이 찾아와 국내 사정을 설명하고 고성에서도 독립만세 의거를 결행할 것을 논의하고 돌아갔다. 그 후 박거수 선생은 배만두, 이상은, 김상욱으로 하여금 거사를 실행토록 막후에서 종용하는 한편 선생의 집과 철성의숙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거사일에는 몸종을 시켜서 고성읍 장터까지 은밀히 운반케 하여 거사 군중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거사 후에는 3.1독립만세 운동의 주역인 배만두, 이상희, 이진경을 독립운동에 참여 시키려고 이들을 당시 상해 이범석 장군에게 보내어 운남기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이수케 한 후 광복군에 종사케 하였다(그 당시 이범석 장군은 운남기병학교의 조교였다).


학생들에게 민족의식 고취

철성의숙의 교육 목표는 삼은(三恩) 곧 국은(國恩), 사은(師恩), 부은(父恩)을 기반으로 나라 찾기에 두고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부르며 독립달성을 바라는 마음을 길렀으며 기미(己未)3.1독립만세 운동 후의 3.1절 기념행사로 소운동회를 개최하고 개천절(당시에는 음력 10월 3일에 거행)에는 대운동회를 갖고 운동회 때는 신호총으로 엽총을 사용하여 일제(日帝)에 무언의 위협을 가하게 하고 철성의숙 운동장 주변 둑은 무궁화 나무를 심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고, 야학(夜學)을 직접 열어 주도 하였다.


원동무역주식회사(元東貿易株式會社) 설립 참여

무량산인 박거수 선생은 경남 마산의 애국지사 나인한, 명도석, 구인욱, 김형철, 옥기환 등과 뜻을 같이하여 원동무역주식회사(해산물, 곡물, 주단, 포목을 도산매하고 수출해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의 일부를 상해에 있는 우리 임시정부에 정치자금으로 보냄) 창립에 참여하여 취체역(取締役, 지금의 이사)에 부임하였다.


그 외 사회단체 운동 참여

1910년에는 고성체육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으로 체육진흥에도 기여하였고 대중운동 모임체인 청년단과 신간회 조직에도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뽕나무를 심어 양잠실습을 실시하고, 읍내 무학동에 김재익 공의 집터를 빌어서 양철집을 지어 봄과 가을을 통해 누에를 치게 하여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금은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어 생업자금으로 쓰게 하였다.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운명

박거수 선생은 1927년 10월 자녀교육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 후 1928년 음력 3월 23일 서울 태평로에서 교통사고로 42세의 젊은 나이로 운명하였다. 고성문화원에서는 박거수(朴居洙) 선생의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는 고성읍 무량리에 표시석을 설치하였다.

<1930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철성의숙 당시의 모습>

<1930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철성의숙 당시의 모습>

<철성의숙(鐵城義塾)의 옛터, 고성읍 덕선리 티라노모텔 옆>

<철성의숙(鐵城義塾)의 옛터, 고성읍 덕선리 티라노모텔 옆>

<박거수(朴居洙) 선생이 태어난 곳 표시석, 고성읍 무량리>

<박거수(朴居洙) 선생이 태어난 곳 표시석, 고성읍 무량리>

<참고자료>

- 고성신문 기사: 2010. 4. 2.(원고: 하기호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 고성의 겉살과 속살을 찾아서(고성문화원, 2013. 8. 29.) 

- 무량산인의 한평생(문성출판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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