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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문화관광

선각자 김재익

작성일 2017.12.07

작성자 문화체육과

조회수 731

선각자 김재익 인물 이미지
김재익(金載翼, 1892~1966) 선생은 고성군 고성읍 동외리 489번지에서 아버지 김상홍(金相弘) 옹과 어머니 박승숙(朴昇淑) 여사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의 꿈을 펼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의 재산과 열정을 바쳐 고성공민학교(현재의 ‘철성고등학교’와 ‘철성중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지역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실천한 선각자이다.

김재익 선생은 우리역사에 있어서 가장 암울했던 시대에 청·장년기를 겪어 면서 지역의 뜻있는 이들과 함께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나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선생은 귀국 후, 대가면 세동마을에서 고성읍 송학동 무학마을로 이사를 와 수산업과 정미소를 운영하였으며, 1946년 5월 국민회 고성군지부장에 피선되어 지역사회 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1956년 3월부터 통영군산양어업협동조합장을 시작으로 전국근어망조합장을 수년간 역임하면서 낙후된 통영시 산양읍 지역민의 2세 교육을 위한 통영 화양초등학교 건립에 자신 소유의 토지를 기증하였으며, 1962년 10월 고성축산업협동조합을 창설하여 그 업무에 필요한 건물과 토지 일부를 기증하고 초대 조합장으로 재임하였다.


1947년 9월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143-1번지(현, 철성중학교)에 자신의 옥답을 희사해 목조로 된 3개 교실과 교무실을 건립 고성고등공민학교(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검정자격시험을 치룸)를 개교하여 교육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후, 1964년 1월 정규교육과정의 재성학원 철성중학교 설립이 인가됨에 따라 1965년 제17회 졸업생을 끝으로 고성고등공민학교는 문을 닫았다.


1964년 당시 고성군내 초등학교 졸업생은 3천 200여명에 비해 상급학교인 중학교 수용학생은 1천 60여명에 불과하였다. 선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관내 중학교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1964년 1월 8일 재성학원 ‘철성중학교’ 설립인가를 마치고, 그해 3월 5일 고성고등공민학교 교정에서 개교식과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학교명은 고성의 옛 지명으로 일제강점기 박거수 선생의 민족학교 ‘철성의숙’의 교육철학과 정신을 계승하고자 철성중학교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안타깝게도 제1회 졸업식을 보지 못한 채 1966년 9월 타계하였으며, 2011년 4월 재성학원과 철성고등학교 동문들은 설립자인 김재익 선생의 선행과 업적을 길이 기억하고자 모교인 철성고등학교에 흉상을 제작 건립하여 고인의 유지를 받들고 있다.

<설립자 김재익 선생 흉상, 현 철성고성학교 교정 내>

<설립자 김재익 선생 흉상, 현 철성고성학교 교정 내>

<철성중학교 최초 목조건물>

<철성중학교 최초 목조건물>

<철성중학교 건립당시 자원봉사 현장>

<철성중학교 건립당시 자원봉사 현장>

<현 철성고성학교 교정>

<현 철성고성학교 교정>

<참고자료>

- 철성중학교 50년사(201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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