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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문화관광

예인(藝人) 고산 허종복

작성일 2018.05.01

작성자 문화체육과

조회수 847

예인(藝人) 고산 허종복 인물 이미지
고산 허종복(1930~1995) 선생은 고성군 동해면 봉암리에서 출생하여 동해초등학교와 여러해 동안 한학을 수학하다 마산상업중학교(구 마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7년(당시 27세)에 <고성오광대>에 입문하여 양반춤과 문둥북춤, 승무를 비롯한 가면제작 등을 전수 받고 1970년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고성오광대보존회장을 역임하면서 조직체계를 정립하고 오광대 기본무 정리와 후진 양성 및 전수에 일생을 바친 예인이다.

선생은 1945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3년간 글방에서 한학을 수학하다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경남 마산에 소재한 마산상업중학교 재학시절 기방의 춤 선생이던 김형도에게 굿거리춤과 지성승무, 양반춤을 사사받고 황성주에게는 학춤을 사사받은 후 고향으로 돌아와 27세에 고성오광대에 입문하여 김창후에게 양반춤을, 홍성락에게 탈제작과 문둥북춤을, 천세봉에게 승무를 전수받았다.


1964년 고성오광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고성오광대 활동에 전념하여 1970년에 고성오광대 탈 제작과 말뚝이 춤 기예능보유자(지금의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후 고성오광대 기본무와 말뚝이춤, 문둥북춤 등을 정리한 춤사위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자 전통예술연출가 진옥섭은 『허종복은 훤칠했고 흔쾌히 뛰쳐나가는 도약이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춤꾼은 보지 못했다. 탈춤을 추는데 ‘탈속(脫俗)’의 춤이었다.』라고 평했다


또한, 1965년부터 탈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여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재료로 제작을 시도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1984년부터 1994년까지 고성오광대보존회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조직의 기초를 정립하였고 1975년부터 시작된 대학생 전수활동을 통해 1만 여명의 전수생들에게 춤사위를 직접 지도하여 고성오광대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은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1년 고성군민상(문화체육부문)을 수상하고 1994년 경상남도 문화상(공연예술)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암으로 투병 중 1995년 4월 14일 향년 65세에 별세했다.


고성군에서는 고성오광대보존회로부터 기탁 받은 고산 허종복 선생이 제작한 탈 60점을 고성탈박물관에 보관,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올해 7월 선생의 유품과 자료들을 모아 고산 허종복 선생의 예술세계와 일생을 추모하는 특별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선생의 고성오광대 탈춤 전수 모습>

<선생의 고성오광대 탈춤 전수 모습>

<선생의 고성오광대 탈 제작 모습>

<선생의 고성오광대 탈 제작 모습>

<허종복 선생이 제작한 고성오광대 탈(脫)-선녀>

<허종복 선생이 제작한 고성오광대 탈(脫)-선녀>

<허종복 선생이 제작한 고성오광대 탈(脫)-비비>

<허종복 선생이 제작한 고성오광대 탈(脫)-비비>

<허종복 선생이 제작한 고성오광대 탈(脫)-큰어미>

<허종복 선생이 제작한 고성오광대 탈(脫)-큰어미>

<허종복 <허종복 선생이 박으로 제작한 탈, 고성탈박물관 상설전시실>선생이 박으로 제작한 탈, 고성탈박물관 상설전시실>

<허종복 <허종복 선생이 박으로 제작한 탈, 고성탈박물관 상설전시실>선생이 박으로 제작한 탈, 고성탈박물관 상설전시실>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노름마치』(진옥섭, 2007,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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