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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 교수
김열규(金烈圭, 1932~2013) 교수는 고성군 고성읍 덕선리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하였다. 충남대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와 김해 인제대학교 교수,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대구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다. 50여년을 교직에 있으면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동시에 연구하였고 생의 마지막까지 가르침과 배움을 멈추지 않은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로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영원한 멘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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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배만두
배만두(裵萬斗, 1896∼1979) 선생은 고성 하일면에서 태어나 고성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고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찍이 한학을 수학하고 1914년 무렵부터 서울로 올라가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기독교청년회가 운영하는 야학에 다니며 학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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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백초월
백초월(1878~1944, 속명 인영) 스님은 1878년 2월, 경남 고성군 영오면 성곡리(금산마을)에서 태어나 14세에 함양군 지리산 영원사로 출가하여 한국근대사의 대표적인 승려이자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공적을 이뤄 진정한 보살의 행보를 가신 큰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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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심재인
심재인(沈載仁, 1918~1950) 선생은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평동마을에서 태어나 1938년 일본 장기현(長崎縣) 소재 간조농학교(諫早農學校)에 재학하던 중 일본인들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차별대우를 체험하면서 민족적 각성(覺醒)으로 비밀결사 재일학생단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지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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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금복
이금복(李今福, 1912~2010) 선생은 경남 고성군 하일면 오방리에서 1912년 11월 8일 이석제(李奭濟)의 장녀로 태어났다. 결혼 후 부산 초장동 방직공장에 취직해‘여공과 더불어’라는 격문을 인쇄·배포하여 옥고를 치루었으며, 하일면 거주 당시 용산독서회를 조직하고 적색노동조합에 가입해 농촌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고성의 유일한 여성독립지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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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낙종
최낙종(崔洛種, 1891∼1945) 선생은 경남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에서 태어나 고성지역 최초 독립운동인 구만·배둔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를 규합하여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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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허재기
독립운동가 허재기(許在基, 1887∼1969) 선생은 경남 고성군 구만면 저연리에서 태어났으며, 3.1만세운동 주도와 독립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3월 20일 회화면 배둔리(會華面 背屯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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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희(묵근자) 선생
묵희(墨熙, 1875~1942) 선생은 고성군 동해면 장기리(군진마을)에서 태어나 1900년대 초 문장력과 서예가 뛰어난 인물로 선생의 유문(遺文)이 일본에까지 전해져 소장되고 있으며, 일명 묵근자(墨根子),구절산인(九節山人)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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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김춘랑
김춘랑(金春朗, 1934~2013, 본명 김태근) 선생은 평생을 전업작가로 살아오면서 고향에 대한 애향심으로 고성에 뿌리를 두고 한국예총 고성지회장을 엮임하는 등 고성의 예술문화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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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황경윤
황경윤(黃敬潤, 1922~2011) 前고성문화원장은 문화에 대한 개념이 없던 고성지역에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선생은 고성문화의 시작이고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