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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문화관광

공룡 이후 인류문명의 시작

“인류의 시작은 기원전 약 4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구스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다.”

초기인류의 출현

인류의 시작은 기원전 약 4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구스(Ausralopithecus)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를 거쳐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가 출현하게 된다. 이들 초기인류는 강가나 해안가의 동굴이나 막집을 짓고 살며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였다.

구석기/신석기 시대

한반도의 구석기시대는 약 70만 년 전 시작된다. 구석기인들은 뗀석기를 사용하며 동굴이나 강가에서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였다. 고성군의 인근 지역인 진주시 월평리, 사천시 이금동 등지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고성지역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인접한 통영의 욕지도, 상노대도, 연대도 패총과 사천시 구평리 유적의 분포양상을 미루어 고성지역에서도 동일한 신석기문화를 형성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

청동기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벼농사의 시작과 계급분화이다. 계급사회의 증거로 고인돌[支石墓]과 여기서 발굴된 동검(銅劍) 등의 유물을 들 수 있다. 고성에 분포하고 있는 다수의 고인돌과 돌널무덤, 집터 등은 고성에서의 활발했던 청동기 문화를 알려준다. 청동기시대 고성의 주요 유적으로는 하일면 오방리, 학림리 고인돌과 하이면 석지리 고인돌이 있으며, 고성읍 교사리, 상리면 무선리, 마암면 두호리에서는 청동기 시대 돌널무덤과 집터가 발굴조사 되었다.

소가야의 성립

고성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고자국, 인근 해상세력과 규합하여 소가야국을 성립!”

  • 한소국들은 1세기부터 낙동강 서안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이후 각각의 가야국으로 성장하였다.

    고성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던 고자국은 고사포국, 고차국 등으로 불리며 남강유역과 남해안 일대에 해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고자국은 포상팔국(浦上八國) 중 하나로서 2차례의 포상팔국의 전쟁 때 그 중심세력으로 활약하였다.

    5세기경 고자국은 세력을 더욱 확장하였으며 인근 해상세력들을 규합하여 소가야국을 성립한다.

해상왕국 소가야

“소가야는 5세기 한반도 남부지방의 교역과 물자이동의 중심지로서 활약하였다.”

  • 고대로부터 해상세력으로 발전해온 소가야는 5세기 한반도 남부지방의 교역과 물자이동의 중심지로서 활약하였다.

    5세기 후반 고구려의 남진은 한반도 남부지역 정세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지리적으로 남해안의 중심에 위치하여 해상활동에 능했던 소가야는 남해안을 배경으로 한 교역 및 운송의 중심역할을 하며 번영하였다.

    그 증거로 송학동고분군 등 이 시기 축조된 고성의 고분군에서는 소가야의 문화를 바탕으로 백제·신라·영산강세력·대가야·왜의 문화요소가 모두 발견되고 있다.

소가야의 고분

고분이란 봉분을 가진 삼국시대 분묘로써 축조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고분이란 봉분을 가진 삼국시대 분묘로써 축조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장의문화로서 동일 정치체 내에서는 유사한 축조방법과 유물부장풍습을 공유하였고, 교류의 흔적으로 외부의 장의요소가 유입되기도 한다. 고성의 고분에서 발견되는 분구묘와 채색석실, 유공광구소호 등이 그러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소가야의 중심지가 고성이라 하고 있다. 고성읍을 중심으로 소가야의 왕묘 혹은 수장의 묘로 볼 수 있는 직경 25M 이상의 대형고분이 집중하고 있다. 특히 대형분인 송학동 1호분을 비롯하여 기월리고분이 고성읍에 위치하는 것은 소가야세력의 지배적 헤게모니를 가진 집단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반증한다.

동해면 내산리에 위치한 내산리고분군과 영오면 연당리에 위치한 연당리고분군은 외부에서 고성읍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각각 해상과 육상의 관문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지역에는 이밖에도 30여개소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고분군은 소가야 지역 내에서 각각의 역할을 담당했던 재지세력들이 조영한 것으로 당시 송학동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소가야 정치체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가야 이후 고성의 역사

“주요 요직의 인사를 배출하고 서부경남해안지역의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 고성!

  •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5년(685년)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정비하였다. 이때 청주(진주)를 설치하고 그 밑에 고자군(古自郡)을 설치하였다. 이후 경덕왕 16년(757년) 고자군(古自郡)을 고성군(固城郡)으로 개칭하게 된다.

    이후 고성은 1900년 진남군이 설치되어 지금의 통영에 속한 도선면, 광이면, 광삼면이 진남군에 편성되기 전까지 서부경남해안지역의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여 왔다. 또한 광복 이후에는 수많은 군과 정부요직의 인사를 배출한 인재의 고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