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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문화관광

연극배우 추송웅

작성일 2017.10.20

작성자 문화체육과

조회수 960

연극배우 추송웅 인물 이미지
연극배우 추송웅(秋松雄, 1941∼1985)은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에서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추외수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산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거쳐 1963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빨간 피이터의 고백’을 기획, 제작, 연출, 장치, 연기까지 도맡는 1인 5역으로 성공시켜 한국에 모노드라마 붐을 일으키고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로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이다.

추송웅은 1963년 극단 민중극장(民衆劇場) 창립동인으로 창립공연인 마르소 작, 김정옥 연출의 <달걀>에 출연하여 연극계에 데뷔하였고1965년 극단 가교(架橋) 창립동인, 1966년 극단 광장(廣場) 창립동인, 1967년 극단 자유극장(自由劇場) 입단, 1979년 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 입단, 1980년 4월 살롱 ‘떼아뜨르 추(秋)’ 개관, 1982년 5월 극단 ‘떼아뜨르 추’ 창단, 1983년 8월 ‘떼아뜨르 추’ 3·1로극장(三一路劇場) 개관 등의 활동을 했다.


또한, 성격배우로서 독특한 희극적 연기술을 개발하여 소극풍(笑劇風)의 추송웅 스타일을 확립시켰는데, 이것은 그가 주로 프랑스풍의 희극들인 <따라지의 향연>(1966)·<아가씨 길들이기>(1971)·<프로랑스는 어디에>(1971)·<세빌리아의 이발사>(1972) 등에 출연하면서 구축되었으며,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1977)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다.


이와 같은 그의 개성적인 연기와 성격창조에 힘입어 1977년 3·1로 창고극장에서 공연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이터의 고백>은 4개월 만에 6만여 관객을 동원하는 최대의 화제작이 되었고, 일본공연의 기회를 얻기까지 했다. 이 작품은 그의 또 하나의 모노드라마 <우리들의 광대>(1979)와 더불어 그를 이 시대의 유니크한 배우로 부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소하였던 모노드라마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 밖에 그의 주요 출현작품은 <뜻대로 하세요>(1964)·<토끼와 포수>(1965)·<한꺼번에 두 주인을>(1967)·<타이피스트와 대머리 여가수>(1969)·<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1970)·<보이체크>(1975)·<빠담 빠담 빠담>(1977)·<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9)·<올리버 트위스트>(1983)·<파랑새>(1985) 등으로 80여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추송웅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1971년)』, 『세빌리아의 이발사(1973년)』로 두 차례의 동아연극상(東亞演劇賞) 최우수남자주연상을 수상하였으며, 1979년에는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한국연극영화상 최우수남자연극연기상을 받았다.


그러나, 1985년 12월 29일, <우리들의 광대>에 출연하던 중 44살의 나이로 작고(作故)하였으며 그의 자녀인 추상미가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고성문화원에서는 연극배우 추송웅을 기리기 위해 그가 태어난 생가에 표시석을 설치하였다.

<연극배우 추송웅이 태어난 곳 표시석, 거류면 고성유치원 입구>

<연극배우 추송웅이 태어난 곳 표시석, 거류면 고성유치원 입구>

<참고자료>

- 『한국연극』(한국연극협회, 1986. 1.) 

- 『한국연극·무용·영화사』(대한민국예술원, 『한국예술사총서』 Ⅳ, 1985) 

- 『추송웅연구』(안치운, 예니, 1995) 

-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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