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서비 최우순
작성일 2018.06.05
작성자 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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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강행한 일본은 전국의 명망 있는 유림에게 일본왕의 은사금(恩賜金)을 주어 민심을 무마하는 술책을 썼다. 1911년 3월 일본헌병(선무대 중대)들이 찾아와 은사금(恩賜金)을 받을 것을 강요받았으나 서비 선생은 대의와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완강하게 거부하자 일본헌병이 밤이 되어도 가지 않고 돈을 받지 않으면 강제로 연행하겠다고 하여 ‘날이 밝으면 내 발로 걸어가겠다.’며 거짓으로 자게하고 그날 자정을 기해 북방을 향하여 재배한 다음 조국광복을 염원하며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하였다. 이날이 1911년 신해년(辛亥年) 3월 19일 향년 80세이셨다.
서비 선생의 장한 순절(殉節) 소문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의 유림과 지사들이 선생의 우국충절(憂國忠節)을 기리기 위해 1924년 도곡산록(道谷山麓)에 사당을 건립하고 서비정(西扉停)이라 이름하여 해마다 향사(享祀)를 모시고 선생의 의절(儀節)을 추모하고 있으며, 1945년 해방이 되자 전국의 유림과 많은 고성군민이 서비 선생의 숭의회(崇義會)를 조직하여 순열(殉烈)의 정신과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학동마을 입구에 서비 최선생 순의비(殉義碑)를 건립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충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으며, 고성문화원에서는 서비 최우순 선생이 태어난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 옛터에 표지석을 설치하여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서비정,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
<서비 최우순 순의비,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 입구>
<서비 최우순 선생 생가(순의하신 곳),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
<서비선생 문집>
<서비선생 문집>
<참고자료>
- 국가보훈처 공훈록(최우순)
- 고성독립운동사(고성문화원, 2015. 12. 28.)
- 고성신문 기사(2011.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