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성군

국가상징

선박의 유래

  • 사람이나 화물을 적재하고 물에서 항행하는 구조물로 정의되는 배는 부양성, 적재성, 이동성의 세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 일반적으로 Ship은 대형선을, Boat는 소형선을 말하며 Vessel은 대형선과 소형선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불려지고 있다.

배가 인류의 문명사에 등장한 것은 과연 언제일까?

처음으로 인류역사에 나타난 것은 「노아의 방주」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 선」일 것이며, 두선박 모두 신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따라서 한토막의 나무조각을 배로 이용한 것을 배의 시초로 본다면 배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어서 나무토막이나 갈대, 대나무 등을 묶어서 뗏목을 만들게 되고, 다시 도구를 이용하여 통나무를 파서 만든 통나무배나 구부러진 나무가지를 골격으로 하여 가죽을 입힌 가죽배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단계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목재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선이 나타나게 되었다.

기원전 2000년

현존하는 배의 유물중 구조선 형태를 갖춘 최고의 것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전 2000년의 고대 이집트선의 모형으로 길이가 80㎝ 가량이며, 또한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는 길이 140m, 폭 23m, 높이 약 14m로 최근의 선박으로 비교한다면 2만톤급의 다목적화물선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배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인류는 처음에는 사람의 힘만을 이용한 櫓船(노선)에서 바람을 이용한 帆船(범선)을 만들게 되었다.

기원전 3000년

B.C 3000년경 이집트에서는 20여개의 노와 돛을 장비한 구조선이 출현하였고 로마, 페니키아, 그리스 등 여러나라도 기원전에 이미 노와 돛을 갖춘 거선을 건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세기

중세기에 들어오면서 더욱 배의 크기는 커지고 장거리를 항해할 수 있도록 발전되었다.

특히 13 세기 무렵 부터는 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바람의 힘만을 이용한 범선을 개발하여 바다를 개척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범선은 15세기와 16세기의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급속도로 발 달하였고 19세기초에 철선과 기선이 나올때까지 수세기동안 전성기를 이루었다.

15세기말에 콜럼부스의 SANTA MARIA호는 전장 29m, 滿載排水量(만재배수량) 233톤이었으며 16세기말의 우리나라 거북선도 전장이 30m를 넘고 선체 길이 28m, 폭 8.7m가량의 목조범노선이었다.

이와 같은 목조범선은 철선과 기선이 출현할 때 까지 수세기 동안 선박의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 NELSON 제독의 기함인 VICTORY호는 전장 226.3 ft, 전폭 51.5 ft, 砲(포) 갑판만 해도 3층이고, 승무원은 850명이었다. 또한 수면밑을 동판으로 보호한 被覆船(피복선)으로서 범선의 규모를 웅변하고 있다.

17~18세기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였던 스페인과 폴투칼이 차차 쇠퇴하고 17~18세기에는 영국, 네델란드 등이 새로운 세계 강국으로 등장하여 바다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17세기

네델란드는 일찌기 동인도와 동남아에 눈을 돌려 17세기 전반까지는 유럽의 무역을 한손에 쥐고 세계 무역의 반 이상을 차지하였으며, 한편 영국은 1651년 10월 자국의 해운과 무역의 보호를 위하여 항해법을 만들어 네델란드의 무역독점에 대항하였다.
이 항해조례는 어떠한 화물이든 자국의선박이 아니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영국 영토와 식민지를상대로 무역을 할 수 없으며, 모든 타국의 선박은 영국의 연안무역을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세계 최초의 해운보호에 관한 법이었다.

또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17세기 부터 18세기에는 무역규모가 급증함에 따라 바다의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각국에서 군함과 대형범선의 건조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인도무역에 종사하던 상선의 대부분이 400톤 정도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규모였다.

18세기

18세기에는1,200톤의 무역선이 등장함으로써 범선의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인간이 기계를 이용하여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된 것은 18세기에 와서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19세기 초에 이 증기기관을 장치한 기선이 나오고 부터이다.

18세기말경에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선박에도 증기기관을 이용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드디어 1807년 미국의 과학자 Robert Fulton은 증기기관과 外輪車(외륜차)를 장비한 Clermont호를 만들어 허드슨강에서 뉴욕과 알바니를 항해하는데 성공함으로서 기선은 곧 세계 도처에 번져나가게 되었다.

철구조선과 기선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현하였다. 선박을 만드는 재료에서 보면, 1783년에 영국의 헨리 코트가 새로운 제철법을 개발함으로써 이제까지의 나무로 만든 목선에서 드디어 철선이 등장하게 되었다.

최초의 철선으로는 1818년 영국에서 건조된 Vulcan호라는 艀船(부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기선으로 최초의 철선은 1822년 영국에서 건조된 길이 36.6m, 폭 5.18m, 30마력의 Aaron Manby호였다.

19세기

19세기말에 이르러 철선은 계속 증가하고 배의 크기와 성능도 향상되었는데 대서양을 횡단한 길이 97m, 폭 15m, 여객정원 4,000명, 최대 속력 15노트의 Great Eastern호의 출현은 대형 철선의 건조를 촉진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1858년 Bessemer에 의해 제강법이 발명되면서 철보다 더욱 우수하고 강한 강철이 널리 공급되면서 1862년에 325톤급Banshee호가 건조되었다. 그러나 보다 큰 규모의 상선이 건조된 것은 1879년 1,777톤급 Rotomahana호가 시초이며, 최근 100여년동안에 선체,기관은 물론 항해기기 등의 경이적인 발전과 함께 항해술과 선박 운용의 기술도 크게 발전하여 왔으며, 세계 무역량의 지속적인 증가와 화물의 특성에 따라 보다 다양한 선종.선형으로 세분화되면서 오늘날과같은 설비를 완비한 우수한 선박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와같은 과정을 조선산업의 기술적 변혁과정과 국제경제환경의 변화를 토대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면 우선 근대공업으로서의 조선산업은 산업혁명 이후 蒸氣機關(증기기관)의 발명에 의한 목조 蒸氣(증기) 외항선의 출현을 전환점으로 하여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산업혁명으로 공업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원료무역등 해운업의 호황으로 조선업의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그 후에 조선기술상으로는 철선이 출현하고, 철선이 강선으로 교체되는 기술상의 발전과정을 거침으로써 대륙간 장거리 무역이 용이해지는 한편 자유무역주의가 고조되고 선박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조선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19세기말 무렵에는 각국간의 관세전쟁으로 보호 무역주의가 팽배해짐에 따라 조선산업의 성장은 정체되고 이후 잇달은 양대전쟁으로 해운업은 심한 타격을 받는 반면에 조선산업은 전함위주의 군수산업으로 발전을 보게 되었다.

한편 19세기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 까지의 조선기술의 발전으로는 첫째, 추진기관의 일대 변혁으로서 터빈선, 디젤선, 중유燃燒(연소)선 및 전기추진선의 출현과 둘째, 선대기간을 단축하고 선체중량을 가볍게하여 적하중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블럭건조공법이 급속히 보급된 점을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GATT-IMF체제에 의한 국제무역질서의 확립으로 국제무역의 자유화가 이루어져 다시 조선업과 해운업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특히 50년대에는 수에즈운하 분쟁을 계기로 조선 및 해운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해운시장에 있어서는 주요 항로의 변화를 야기하였다.

즉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대신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을 돌아가는 새로운 항로가 개척된 것이다. 이에따라 VLCC급과 Cape size급 BC가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조선시장은 해운시장의 이같은 변화로 야기된 대형선의 수요급증과 아울러 항로의 장거리화에 따른 필요선박의 증가로 신조수요가 급격히 늘게 되었던 것이다.

담당부서문화환경국 체육진흥과 체육시설담당 

전화(FAX)055-670-4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