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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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973년
7월 1일자 대통령령 제6542호로 마암면 좌연리를 개천면에 편입
1983년
2월 15일자 대통령령 제11027호로 삼산면 이당리, 대독리가 고성읍으로, 개천면 나선리 선동이 구만면 화림리로 편입.
1984년
28월 22일자 고성군 조례 제858호로 고성군 리 동 명칭 및 구역 확정에 따라 고성군의 행정 리·동은 260개로 되었다.
1986년
6월 30일자 고성군 조례 제961호로 하일면 용태리에 가룡을, 춘암리에 맥전포를, 영오면 영산리에 낙안을 증설하여 고성군의 행정 리·동은 263개로 지정.
1987년
12월 24일자 고성군 조례 제1002호로 삼산면 두포리에 와도를, 하일면학림리에 임포를, 송천리에 자란을 증설하여 고성군의 행정 리·동은 266개로 됨.
1988년
5월 24일자 고성군 조례 제1031호로 고성읍의 동(성내, 서외, 수남, 동외, 송학)을 리로 각각 개정하여 고성군의 행정리는 266개 리로 됨.
1997년
12월 31일자 고성군 조례 제1537호로 고성군의 이장정수가 조정되고 고성군의 행정리는 마암면 도전리 기전, 장산리 서장산, 신리 신지, 석마리 감동이 감축하여 262개 리로 됨.
2008년
고성군이장정수및행정리명칭에관한조례 제1924호로 삼산면 삼봉리 하촌을해명으로 마을명칭을 변경함. 1읍 13개면 119개 법정리 262개 행정리를 둠.
일제강점기
1910년
10월 1일자 부령 제8호로 면의 명칭 및 구역의 변경은 조선 총독의 인가를 득하여 도장관이 이를 정함을 공포.
1912년
7월 17일 조선총독부령 제129호로 고성군 남양면을 사천군에 편입.
1914년
3월 1일자 조선총독부 경상남도령 제2호로 면의 명칭 및 구역을 정할 때 고성군의 면은 아래와 같이 병합.
1918년
10월 1일 철성면을 고성면으로 개칭.
1938년
부령 제197호로(1938. 10. 1) 고성면이 읍으로 승격됨으로써 고성군은1읍13개면으로 행정구역이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대한제국
1900년
7대한제국 4년 5월 16일자 칙령 제19호로 고성군의 도선면, 광이면,광삼면이 진남군에 귀속.
1906년
9월 24일자 칙령 제49호로 지방행정구역을 정리할 때 진주군 문선면, 남양면, 영오면, 영이곡면, 오읍곡면, 개천면이 고성군에 내속 되었고,고성군은 23개면으로 늘어남.
조선시대
1507년
문종 원년(1507) 고성성 축성(3011척 : 세종지리지에 2백 85보 <1700척>)
1592년
1592년(임진년) 5월 초경 당시 현령 김현은 현치소를 자란도(자란도)의 읍포(고을개)이설 정유재란의 사실상 종전인 선조 31년(1598) 11월 19일 왜철수군과 이순신의 노량해전시 직후까지로 추정 (자란도 : 임진란 이현치우 차도고 지령 칭읍포 : 견승람 ~ 고성지)
1598년
선조 30년(1598 : 일본 경진 2년) 고성 수남리에 왜성을 고성 본성에 연접하여 축성(吉川廣家란 왜장)
1869년
5고종 6년(1869년) 8월 16일 통제영이 소재하고 있던 春元面에서 호적관계 분규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고종 7년(1870년)에 읍치소를 고성에서 춘원면 통제영내로 옮겨와서 사태를 수습하고, 고종 9년(1872년)에 고성현으로 되옮겨 이때 고성향교도 죽림리로 옮겼다가, 함께 되옮겨 왔음.
1895년
조선조 고종 32년(개국 504년 : 서기 1895) 5월 26일자 칙령 제98호로 지방제도를 개정할 때 진주부로 속하여 있다가 고성군으로 다시 개칭.
1896년
칙령 제36호(1896년)로 13개도제를 실시함에 따라 경상도에서 경상남도로 분리 도청소재지를 진주로 함(1부29군)
고려시대
서기
995년
고성군이 관할하던 泗水縣(현재 사천)을 고려초에 진주목에 소속.
상선을 고려초에 영현으로 고침
고려 6대 성종 14년(995)에 諸般制度의 재편으로 고주자사를 두었다가 뒤에 철성부로 개칭.
서기
1018년
고려 현종 9년(1018)에 고성현으로 개칭되면서 현의 각면의 행정구역은 서읍내면, 동읍내면, 상서면, 상남면, 하일면, 하이면, 대둔면, 가동면, 동마면, 서마면, 구만면, 회현면, 화양면, 광일면, 광이면, 광남면, 포도면, 도선면, 춘원면으로 지정.
현종 9년(1018년)에 거제현에 잠시 속했다가 고성으로 복원되고 현령을 둠
서기
1266년
원종 7년(1266년)에 군이 주로 승격.
충렬왕 때 남해에 합쳤다가 얼마 후에 복원했고, 그를 철성이라고도 부름.
통일신라
서기 737년
통일신라시대인 서기 737년(효성왕 1년)에 古資郡으로 개칭.
서기 757년
신라 35대 경덕왕 16년(757) 지방명칭을 한식으로 개칭시 古資郡을 고성군으로 개칭.
泗州(泗川)는 원래 사물현인데, 경덕왕은 泗水로 고쳐서 고성군의 관할하에 현으로 만듦.
영선현은 원래 신라의 일선현인데, 경덕왕이 상선으로 고치고 고성군 관할하에 둠.
서기 828년
신라 흥덕왕 3년(828) 태종무열왕의 9대손인 역대 장상의 혈손으로 무장 김양을 고성 첫 태수로 임명하고 얼마후에 중원(현충주) 대윤에 임명되고, 얼마 후 무주(현 광주)‘도’로 전임
삼국 '가야'
서기 42년
전후로 추정
한의 광무제 건무 18년 3월에 낙동강 하류에서 건국한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6형제중 막내인 말로(末露)가 소가야국을 건치(建置)하였다. 소가야(삼국유사)라는 하나의 별명을 가진 고자국(古資國)으로 선사인과 삼한의 고자미동국인(신석기인, 청동기인)이 즉 재지인과 내지인의 가락국 구천 회의이나, 신라의 화백회의의 지도자 선출방법으로 최고통치자를 선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포상팔국연맹체의 중심세력국이었다.
서기
562년경
신라에 병합
562년경 신라 진흥왕 23년 대가야 멸망 이후 이사부의 馬戱戰法에 의하여 신라에 병합 될 때까지 국내에서는 古資國으로 일본서기 등에는 古嗟, 久嗟로 국명이 기록되어 있음.
선사~삼한
기원전
도서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의 패총 등에서 각종 토기의 발굴로 신석기 시대의 생활을 가늠하게 되었고, 고대인들이 돌로 싼 지석묘, 석관묘 등으로 보아 2천년 이전의 원삼국시대 변한지역 열두나라 중의 하나인 弁辰 古資彌凍國의 건국이 『삼국지』위지동이전에 기록되어 있음.
  • 담당부서 행정과 행정담당  전화 (FAX)  055-670-2101(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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